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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좀 하소

고기가 되지 못한 소들의 이야기. 2002년, 사람들은 소를 싸움시키는 행위를 전통이라 칭하고 합법으로 규정했다. 그와 동시에 각종 소싸움대회를 열고 도박장도 지었다. 사람들은 거대한 원형 경기장으로 소들을 끌고 와 싸움을 시킨다. 우권은 불티나게 팔리고 사방에서 팡파레가 터진다. 그 가운데에서 사람 아닌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하다. 끝없이 이어진 트럭 위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민 소들이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건넨다. “그런데, 내 이야기도 좀 들어주면 안 될까?”
프로그램 노트
<그만 좀 하소>는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소싸움’ 산업의 이면을 낱낱이 보여준다. 소싸움 경기 후 피를 흘리며 대기실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소들, 이런 소에게 고삐를 조이며 (그러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며) 훈련을 시키는 조련사, 소싸움에 돈을 거는 도박꾼들, 소싸움 산업을 육성하려는 지역 정치인들, 그들과 유착된 축산업자들. 또 한편으로, ‘소싸움’ 산업의 법적 모순을 짚어내는 동물권 변호사들, 소싸움 반대운동을 하는 평범한 시민들까지.
소싸움은 과연 전통인가, 도박인가, 산업인가, 동물학대인가? 감독은 이 논쟁적인 이슈에 어떤 주장을 하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개입하지 않고 차분하게 현장을 지켜보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는 카메라가 가장 자주 향하는 곳은 소의 눈동자이다. 커다랗고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카메라는, 인간이 이 순한 동물에게 가혹한 싸움을 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지 묻는 듯하다. ‘응시’는 ‘주장’보다 힘이 세다.
고정불변의 문화나 전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의 모든 문화와 전통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바뀌어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노예제도, 순장, 마녀사냥 같은 잔인한 관행들도 전통과 문화라는 이유로 존속해야 할 것이다. 영국의 여우사냥은 귀족과 왕족들의 문화였지만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금지되었고, 스페인의 투우도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커지면서 카탈루냐 지역 등에서 금지되었다. 한국의 소싸움이 과연 한국의 진정한 전통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일은 중요치 않다. 한국이 윤리적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동물의 본성과 상관없이 가혹한 싸움을 시키는 것이 과연 21세기에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해야 하는가에 질문하고 답해야 한다. (황윤)
연출 의도
추석 무렵 어렴풋이 들려오던 소싸움경기 소식.
나는 소싸움경기를 실제로 구경하기 위해 청도에 들렀다.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전통문화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우매한 순정이었던 걸까.
거대한 원형 경기장 속 끝도 없이 펼쳐져 있던 우권 매표소.
싸움을 찍는 중계 카메라들과 그 모습을 배당률과 함께 보여주던 거대한 LED 화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도망치는 소와 그 소에게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
작은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를 거칠게 막아선 검은 옷의 보안요원들.

그것이 내가 처음 본 전통소싸움경기장의 모습이었다.

사실 별 관심 없었던 소싸움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탓에 전통문화엔 별 흥미가 없었고 동물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싸움소의 눈물 맺힌 눈망울을 본 순간
검고 깊은 눈망울에 투영된 우리네 모습과 마주쳤다.

사람의 전통문화를 이어가기위해 소들은 싸우고 우리는 즐긴다.
소싸움이 전통문화라는 사람들과 동물학대라는 사람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갈등을 이어나간다.
어느덧 소싸움경기장은 소들만 싸우는 곳이 아닌 사람도 싸우는 곳이 되었다.
수상 이력
2021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경쟁) : 아시아 선정작
2021 인디포럼 신작전 장편부분 상영예정작
2020 전주국제영화제 러프컷 내비게이팅 선정작
2018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제작지원 선정작
2018 EIDF 글로벌 피칭 아카데미 선정작
2018 K-Docs 한국다큐멘터리제작지원 선정작
감독
심영화
1997년생. 서울영상고등학교에서 영상콘텐츠를, 서강대학교에서 Art&Technology를 공부했다. 미디어의 강한 힘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하고자 노력하는 중이다.

섹션 정보

동물, 신작: 지금 할 수 있는 우리의 응답

올해 신작 섹션에서는 인간사회를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여겼던 당연한 문화와 오랜 관습에 대해 자유롭게 의심하려 하는 영화들이 선정되었다. 세계적인 감독들과 영화제가 동물에 집중하는 흐름도 눈에 띈다. 와 는 농장동물의 일생을 담담하게 담았다. 이만하면 동물이 잘 지낸다고 여겨지는 순간, 영화는 동물이 인간에게 잘 대우받는 것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되묻는다. 와 는 사냥과 소싸움이란 전통에 순응하는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들의 충돌을 다룬다. 국내에서 처음 소개되는 는 플라스틱, 기름 유출 사고, 기후 위기 등 인간이 만든 재난으로 위험에 처한 해양동물을 구조하는 해양동물 보호소의 얽힌 시선을 추적하고, 은 공격적인 개를 둘러싼 네덜란드 보호소의 고민을 공유한다. 과 는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돌보며 단단하게 일상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권나미, 김명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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