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어둠에 묻혀 있던 오키나와 전쟁의 조선인 '군속'과 '위안부'의 실상을 추적하는 박수남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 작품 역시 죽은 자의 진혼과 재생의 마음으로 관통된다. 1989년, 박수남은 오키나와로 이주해 전쟁 체험을 청취하고, 한국의 전 '군속'과 일본 병사 등 100명 이상을 취재하였다. 게라마 제도에 강제 연행된 군속들이 일본 병사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과 '위안부'의 비극을 밝힌다. '위안부'는 '천황의 군대에 의한 성폭력'이라고 제기한 본작의 상영 운동은 1990년대에 일본의 책임을 묻는 한국의 전 '위안부'들의 싸움을 지원하였다. 처음으로 '위안부'임을 밝힌 배봉기 씨의 영상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의 사후 시민들의 손으로 '위안부'와 '군속'을 기리는 '아리랑 위령의 기념비'가 1997년 오키나와 도카시키 섬에 세워졌다.
연출 의도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 (1991)에서는 전작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에 이어 황민화 교육의 강제 속에서 변해간 조선인의 한을 다루고 있다. 종군 위안부 문제는 단지 성폭력 문제로 국한되지 않으며, 천황제를 내면화한 남자들과 여자들의 문제로 본다. 영화 <아리랑의 노래>를 보고 종군 위안부와 관련이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종군 위안부 시스템은 국가폭력에 의한 일상적인 강간, 윤간을 의미한다. 이들은 '매춘'을 한 것이 아니며, 천황의 군대에 의한 성폭력의 일방적인 피해자였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황제가 무엇인지 묻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 중 군은 위안소를 관리하여 병사들의 전투력을 유지하려 했고, 살벌한 전장에서 돌아온 남자 병사들이 위안소에 몰려들었다. 병사들의 성도 군의 관리 하에 있었으며, 이는 그들의 삶도 빼앗긴 것을 의미한다.